강 건 작품
강건 작가의 작업은 한동안 갇힌 삶을 살아야 했던 가족과 그로 인해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갇힌 마음으로 살아야 했던 자전적인 이야기로부터 출발한다. 인체나 동물 형상의 조각들은 타자의 시각으로 재 탄생된 또 다른 정체성과 내가 바라보는 진정한 '나'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자화상을 기초하며, 작업 속 등장인물들은 뒤틀어지거나 다른 신체와 결합되고 혹은 일부분이 과장된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를 통하여 사회 속 자아와 타아의 상관관계를 은유한다. 작가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훼손되기 쉽고 연약한 재료에 동질감을 느끼며, 동시에 부실한 것들로 이루어진 단단한 형상에 매료되어 실, 모피, 깃털과 같이 부드러움을 상징하는 재료들을 레진, 합성수지 등의 조형 재료들과 함께 혼합 사용하고 있다.
작가의 작업 속 문득 잘린 조각 부분들은 마치 타인들과의 관계에 있어 그들에게 남겨질 자신의 자아와 닮아 있음을 표현한다. 우리는 저마다의 인간관계 속에 여러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그들 안에 남게 되는데 그것은 분명히 전부가 아니라 일부분일 뿐이며, 타자 안에서 또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마치 실제 우리의 모습처럼 존재하게 된다. 때문에 작가는 각자의 세상에 존재하는 개인의 자아들은 이미 일부분이 사라졌거나 혹은 이미 변해버린 새로운 타아이며, 동시에 사회에서 우리는 완성될 수 없는 비(非)완성의 형상들로 바라본다.
강주리 작품
강주리는 서로 살아남기
위해 필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생태 환경의 변화, 생명체의 변이, 진화에
주목하며, 인간과 자연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한 작업을 회화와 혼합적 설치로 발표해왔다. 작가는 단색 잉크로
크로스해칭(cross-hatching)이라는 여러 단선을 교차, 반복하는
기법을 사용하는데, 그 특성상 작업 속 이미지들은 경계가 뚜렷하지 않으며 뒤얽혀 있다. 이런 혼성화, 탈경계의 이미지들은 다수가 아닌 적고, 작은
것들, 힘이 없는 것들을 대변하며, 이외성이 있는 것들의 복합적인 성향과
양면성이 가지는 가치와 시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의 모호한 경계, 자연과 문명의 구분 없는 사고방식, 유기체와
무기체의 주체화에 주목하며 자연스럽게 인간에서 동식물로, 또 무생물로 작가의 관심이 확장되었고 이는 미술에서 하위개념으로 불렸던 장식미술까지
이어졌다. 회화 작업과 더불어 종이 주물, 조트롭(zoetrope: 초기단계의 애니메이션 기구), 레이스와 천 등을 이용한 설치 작업을 함께 시도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장식화되고 문화화된 생태계인
비바리움, 쉐도우박스, 새장 등을 기반으로 한 회화 시리즈를 선보인다. 대상화되어
시선을 만족시키는 관습화된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을 반전시키고 유기체와 무기체, 과거와 현재, 실재와 환영의 경계 넘기를 시도하고
있다.
권아람 작품
권아람 작가는 주로 언어와 신체 그리고 미디어에 대한 개념적 연계성을 복합 매체 (mixed media)를 이용해 압축 적이고 은유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반영되는 개인적 경험과 사념들은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지만, 문학 또는 상징적 이미지의 차용을 통해 작업의 배경에 스며든다. 언어의 구조와 사고의 방식을 탐구한 이전 작업부터, 미디어가 바영하는 허구적 이미지를 매체의 특성을 통해 조형 언어로 치환하는 탐구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재료루 선택하는 디지털 매체(영상) 또한 단순한 표현 도구가 아니라 탐구하는 사유의 대상으로 포함된다. 인간을 구성하고 둘러싼 도구들, 즉 인간과 세계를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도구(언어, 신체, 미디어)에 관한 개념과 구조적 탐구 작업이 작품의 주제이자 형식이 된다.
작가의 현재 작업의 중요한 기점이 되는<월스(walls)>에서는 현실에 기반한 물리적 개념이 가상으로 연장되는 세계에서 스크린이 더 이상 이미지 운반의 매체가 아니라 욕망이 순환하는 통로로 작동하는데 주목하며, 조각난 화면 속'죽음의 블루 스크린(Blue Screen of Death)'과 '레드 스크린'을 통해 네트워크를 따라 공허하게 기계종횡하는 인간의 정보화된 욕망이 헛된 오류임을 제시한다. 자본의 세계관 아래 욕망의 과녁이 된 스크린은 다시금 미디어 안팎, 즉 두 세계의 허상을 추동하는 물리적 실체임을 제시하며, 언제든 오작동 할 수 있는 디지털 세계에 대한 믿음을 의심하는 모뉴먼트로 작동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자 했다.
박이도 작품
박이도 작가는 다양한 시리즈 작업을 통하여 보편적 삶과 주변 모습을 실상과 허상의 경계에 서서 조망하고 그 사이에서 작용하는 회화의 기능을 탐구한다. 작가는 기존의 형식을 벗어나 스스로 구성한 가상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풍경을 구성하는 다양한 감각과 자연물의 질감을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표현한다. 작가의 풍경화는 밀랍과 종이죽 등의 재료를 여러 방식으로 혼합하여 발현되는 질감을 통해 작가만의 화면을 구성하며 새로운 감흥을 획득한다.
다양한 매체와 결합한 회화적 시도를 통해 대상의 외형적 본성에 새로운 플롯을 덧입히는 작업에 몰두해 온 작가는 작품 제작과 감상이라는 대척점에 놓인 행위 사이에서 묘사 대상에 대한 작가만의 접근법을 보여준다. 작가가 무언가를 묘사한다는 행위는 단순히 그 대상의 구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빛, 온도, 계절, 감정, 시간대 등의 시지각 영역 밖에 머무는 비물질적인 요소까지 아우름을 뜻한다. 하나의 대상을 주제로 승화시키고자 그 외부의 모든 현상을 평면에 구축하는 있음직한 현상계를 창안하는 것이다.
서상익 작품
서상익 작가는 일상과 상상을 결합한 ‘1인극’과 같은 평범한 삶을 그려낸다. 작가는 현실적 공간 속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절묘하게 결합시켜 마치 일상에서 포착한 하나의 순간처럼 자연스럽고
견고한 장면을 연출한다. 그의 작품은 모더니즘적 도시 풍경과, 사실적으로
표현된 인물 등 다양한 소재로 구성되어 일상을 스토리텔링으로 작품에 담고 재해석하며 개인사에서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까지 자신만의 화풍으로 담아
내고 있다. 이외에도 작가는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대가로 불리는 작가들이 어떻게 자기 세계를 구축해 나갔는지를 탐구하며 마티스, 피카소, 뒤샹, 앤디
워홀, 잭슨 폴록 등 거장들의 대표 작품을 배경으로 한 초상화, ‘화가의
성전’ 시리즈를 보여주기도 했다.
일상을 스토리텔링으로 작품에 담고 재해석하며 이론적 구성에 국한된 정체가 가장 두려운 존재라고 하는 작가는 일상이라는 무미 건조함이 보다
개인적으로 사실적인 일상이 되기 위해 상상의 공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과 상상 속 다양한 장면을 이질적인 요소와 결합시켜 독창적인 구도를 통해 작가만의 조형언어를 작품에 담아낸다.
손민석 작품
손민석 작가는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어 주의 깊게 인식하지 않는 대상에 집중하여 그것을 이질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SNS에서 하루 동안만 게시되고 휘발되는 형식의 이미지들은 순수한 정물의 이미지와는 다른 누군가와 어떤 것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순간을 증명하는 사물이나 찰나의 눈길을 끄는 특이한 사물들의 모습이다. 작가는 이렇게 소비되는 음식이나 특정 장소에 있어 소유하기 힘든 어떤 것들을 이미지로 저장해 놓고 휘발되는 형식의 인터넷 게시글인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던 이미지들 속에서 작업의 소재를 찾아 그려낸다.
작가가 그리는 풍경헤는 어떤 곳이 있다, 이것저것의 특정된 것들보다는 소유할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한 장면으로 작가가 바라보는 어떤 곳이 있으며, 무엇을 그리든 그것의 풍경의 성질을 지니도록 그려낸다. 어떠한 특정한 대상들을 묘사하면서도 그것이 현상처럼 보이기를 의도한다. 대상과 형식에 얽매여 정해진 방식으로 그려내는 정물화가 아닌, 주변의 사물들로부터 느꼈던 견고한 익숙함에서 벗어나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어느 특정한 순간의 장면을 인식하는 것이다. 작가는 정물이라는 가까이 있고 멈춰 있는 것이 풍경처럼 멀리 있고 미세하게 흔들리고 흐르며 변화하는 것으로 바라보며, 영원히 존재하며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어떤 것들을 내 눈앞에 찰나의 현상처럼 지나가는 것들로 표현한다.
원성원 작품
원성원 작가는 여러 시점의 현실 공간을 사진으로 직접 찍은 후, 하나의 화면을 구성하는 정교한 사진 콜라주 작업을 진행해왔다. 한 작품을 위해 수만장의 사진을 찍고, 그 중에서 수천 장의 사진을 골라 한 장 한 장 결합시키고 이어나는 작가의 작업은 보통 몇개월에서 몇 년의 시간을 요한다. 디지털 사진이지만 화면 안에서 한 덩어리 처럼 보이는 부분도 여러 장의 사지을 이어 붙여 입체감을 살리는 노동집약적인 콜라주 작업 과정을 통해 사진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더하기도 한다.
작가는 주변의 친구들과 지인들의 실제 이야기를 주제로 작가만의 상상력으로 작업을 구성해 나간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 소스들을 합성하여 다른자소, 다른 시간에서 가져온 이미지들이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수많은 레이어가 만들어 내는 작가의 사진은 분명한 시각 이미지지만, 동시에 다양한 이야기이며 작가의 남다른 상상력으로 공간과 인물을 흔미롭게 병치 시킨다. 이를 통해 허구적 세계 속 새로운 내러티브를 빚어내며, 하얀 공백에서부터 시작한 작업은 수많은 사진 조각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중첩되어 하나의 프레임 속에서 이상적인 공간으로 완성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 속 이상적 공간은 마치 세상 어딘가에 있을 법한 풍경이면서, 동시에 어딘가 낯설고 생경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동재 작품
이동재 작가의 기존 작업들은 캔버스 위에 쌀, 콩, 녹두 등과 같은 곡식이나 크리스탈이나 단추 혹은 레진으로 만든 작은 알파벳을 캔버스 위에 붙여가는 방식으로 이미지르 형상화해왔다. 화면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붙여진 오브제들은 이미지와 유기적으로 작용하며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키거나 주제를 증폭시키는 도구로써 활용되어왔다.
새롭게 선보이는 크리스탈 작업에서는 실제의 공간이 개입하며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화면의 모습이 바뀌기 때문에 작품이 놓이는 장소와 현존하는 관람자의 신체는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며, 가사를 이루는 각각의 알파벳은 크리스탈 스톤으로 치환된다. 캡션을 통해 각 노래의 제목은 알 수 있지만 글자 대신 놓인 크리스탈은 어떤의미도 전달하지 않는다. 언어는 생각을 표현하고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투명성을 가진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 작품은 '투명한' 크리스탈을 사용하여 텍스트를 '투명하게' 보여주면서도 언어를 어떤 의미를 지시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불투명'한 것으로 만든다. 텍스트가 물질적인 오브제로 전환되면서 그 의미는 사라지고 반짝이는 빛의 패턴만 남는다. 한편 이 의미없는 텍스트는 작품을 기억과 상상력, 느낌이라는 개인적인 범위로 확장시키며 풍부한 이야기를 더하기도 된다.